매년 이맘때쯤이면 처가네 가족들이 한데 모여 김장을 합니다. 지난 주말 시골을 다녀왔습니다. 명절은 아니지만 어른들만 모여서 함께 김장을 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딸 셋 둔 장모님은 해마다 김장을 위하여 배추를 손수 다듬고 씻고 소금에 절이며 고춧가루, 새우젓, 양파, 대파, 쪽파, 생채, 생강, 찰밥, 육수 등등으로 양념장 재료까지 완비해 놓으시니 사위들과 딸들은 거의 무임승차 수준입니다. 200포기 넘는 배추를 혼자 다 준비해 놓으셨으니, 우린 그저 버무리고 김장속 배급하고 정리하는 일만 하고서 생색을 내는 서울 사위들입니다.
겉조리에 싸먹는 수육 한점의 맛은 기가막히게 맛있어서 뭐라 표현이 안됩니다. 어머님께 감사하고 죄송하지만, 덕분에 매년 즐거운 풍경으로 김장을 하고 열댓께 되는 통을 들고 서울로 올라옵니다. 일 년이 든든해지는 따뜻한 마음을 안고 떠나려니,
홀로 계신 장모님의 한층 늘어난 주름살이 눈에 박힙니다.“내년에는 미리 재료 준비 다하지 마시고 같이해요.”라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그 말이 목구멍으로 삼켜집니다.
참 다들 불효자식이지유~ 사위는 못해도 딸들은 그리 말해야 되는데......
손수 농사를 지으시니 절임배추를 사드릴 수도 없기에 손수 모든 것을 준비하시니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제 75세가 넘어 무릎 관절이 편치 않으시어 도시의 노인과는 건강상태가 달라 보입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임을 느끼며 다음해에는 김장철에 가족회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한편 출가한 딸네 집의 김장거리 마련하는 것이 당신의 행복이신지, 늘 반갑게 맞이하시며 이것저것 싸주시기에 바쁩니다. 쌀한가마니 챙겨 주시고 물김치 따로 담으시고 갓김치며 제과빵이며 차안에서 먹으라며 귤한봉지에 손녀딸들 좋아하는 식혜까지 잊지않고 싸주십니다. 어머님의 곳간은 요술램프인지 바리바리 싸서 딸들 다 퍼주어도 늘 채워져 있습니다.
그 쏟는 정성만큼 깊어지는 주름과 늘어나는 몸의 생채기들이 쌓여 갑니다. 우린 이렇게 부모님의 사랑과 헌신의 진액을 먹으며 살아가나 봅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언제 갚을 수 있을까요? 내 사는 것 바쁘다고 안부 한번 여쭙는 것도 힘들게 사는 모습에 죄송한 마음이 밀려듭니다. 문득 안부전화 드리는 훈련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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